“남과 여, 이념과 신앙… 우리는 왜 서로 다른 나라에 살까?”

세상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땅을 밟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주소록을 열어보면 우리는 분명 같은 나라의 시민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십시오. 우리는 정말 같은 나라에 살고 있습니까?

언론을 장식하는 정치 뉴스를 보면, 우리는 같은 대한민국 안에서 전혀 다른 ‘이념의 나라’에 살고 있음을 절감합니다. 한쪽의 상식이 다른 쪽에서는 몰상식이 되고, 한쪽의 정의가 다른 쪽에서는 불의가 됩니다. 물리적 국경선은 없지만, 마음의 휴전선은 이미 우리 사회를 깊게 갈라놓았습니다.

신앙의 세계는 또 어떻습니까?

서로가 믿고 고백하는 ‘신의 세계’가 다르다 보니, 같은 현상을 바라보면서도 영적인 해석과 삶의 기준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여기에 각자가 추구하는 물질적, 도덕적 ‘가치관의 나라’까지 더해지면,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도무지 소통이 불가능한 외계인을 마주한 듯한 피로감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가장 가깝고도 먼 세계가 있습니다. 바로 ‘남자의 세계’와 ‘여자의 세계’입니다. 한 집에서 평생을 같이 산 부부조차도 “당신은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왔냐”며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깊은 한숨을 쉽니다.

이념, 신앙, 가치관, 그리고 성별. 우리는 지금 한 지붕 아래에서 무려 다섯 개의 서로 다른 나라를 격렬하게 살아내고 있는 중입니다. 이 거대한 분열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잃지 않고 공존할 수 있을까요?

첫째, 내 안의 ‘과잉’을 걷어내는 ‘프락시스 분별력’

이 혼돈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바로 프락시스(Praxis, 실천적 지혜) 중심의 분별력입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나라로 갈라져 싸우는 이유는, 대개 내 생각과 이념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과도한 집착’과 ‘과잉된 에너지’ 때문입니다. 나의 이념, 나의 가치관을 관철하려다 보니 마음에 과도한 잉여 포텐셜이 쌓이고, 그것이 타인을 향한 날 선 비판과 분노로 표출됩니다.

진정한 분별력은 나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를 꺾으려는 태도를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내 가치관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세계도 그만한 역사의 무게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는 ‘멈춤’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옳고 그름의 잣대로 상대를 뜯어고치려 하지 마십시오. 내 안의 과도한 긴장과 잉여 에너지를 평온하게 가라앉힐 때, 비로소 상대의 ‘다른 세계’가 왜 저렇게 형성되었는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분별력이 있을 때, 우리는 이념과 가치관의 노예가 되지 않고 비로소 삶의 진정한 주인(Transurfer)으로서 관계를 주도할 수 있습니다.

둘째, 작은 일상의 신뢰를 회복하는 ‘신약교회 정신’

그렇다면 이 분별력을 바탕으로 우리는 어디서부터 관계를 다시 맺어야 할까요? 그 해답은 거창한 사회 운동이 아니라, 가장 작고 본질적인 공동체인 ‘가정교회 정신’에 있습니다.

신약교회를 추구하는(가정교회의 정신)의 핵심은 ‘제도와 형식’이 아니라, ‘존중과 쉼, 그리고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입니다.

가정교회는 서로 다른 배경과 성향을 가진 이들이 모여, 어떠한 판단도 없이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치유의 공간입니다. 남자의 세계와 여자의 세계가 만나 격돌할 때, 이념과 신앙의 차이로 가족 간에 벽이 생길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논리가 아닙니다. “이번 주도 참 고생 많았다”며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는 격려, 그리고 상대의 지친 어깨를 품어주는 쉼의 자리입니다.

삶의 작은 영역에서 신뢰를 쌓아가는 이 정신이 살아날 때, 나와 다른 세계에 살던 사람들은 경계심을 풀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 매일 연습하는 배려와 존중이야말로, 갈라진 나라들을 하나로 잇는 가장 강력한 접착제입니다.

하나의 대한민국을 향한 여정

세상 나라에 거주하시는 시민여러분!

우리는 여전히 저마다의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서로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는 것은 서로를 배척할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서로에게 배워야 할 미지의 영역이 이토록 넓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 가치관만을 고집하는 내면의 과잉을 분별력 있게 걷어내십시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 내 가정과 이웃이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가정교회 정신’으로 따뜻한 환대의 식탁을 차리십시오.

비록 이념과 신앙, 성별의 차이로 오늘은 서툴고 삐걱거릴지라도, 우리가 서로를 향한 존중과 실천을 포기하지 않을 때, 우리는 마침내 ‘서로 다른 나라’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하나의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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