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땅을 밟고,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주민등록등본을 떼어보거나 주소록을 열어보면 우리는 분명 같은 나라에 소속된 시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일상에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정말로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 맞을까?”
아침에 눈을 떠 뉴스를 켜는 순간부터 우리는 절망적인 대한민국 이념 갈등의 현실을 목도합니다. 언론을 장식하는 정치 뉴스를 보면, 물리적인 국경선만 없을 뿐이지 마음의 휴전선은 이미 우리 사회를 수십 조각으로 갈라놓았습니다. 한쪽 진영의 상식이 다른 쪽에서는 몰상식이 되고, 이쪽의 정의가 저쪽에서는 불의가 됩니다.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는 거대한 ‘이념의 나라’들이 한 땅 안에서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는 꼴입니다.
어디 이념뿐이겠습니까? 신앙의 영역으로 들어가 보면 서로가 고백하는 ‘신의 세계’가 달라 삶의 기준과 영적인 해석이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집니다. 여기에 각자가 추구하는 물질적, 도덕적 ‘가치관의 나라’까지 더해지면, 우리는 같은 한국어를 쓰면서도 도무지 소통이 불가능한 외계인을 마주한 듯한 깊은 피로감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우리 삶에 가장 가깝고도 눈물겨운 장벽이 있습니다. 바로 ‘남자의 세계’와 ‘여자의 세계’입니다. 평생을 한 이불을 덮고 산 부부조차도 어느 날 문득 “당신은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왔냐”며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깊은 한숨을 쉽니다.
이념, 신앙, 가치관, 그리고 성별. 우리는 지금 한 지붕 아래에서 무려 다섯 개의 서로 다른 나라를 격렬하게 살아내고 있는 중입니다. 이 거대한 분열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잃지 않고 진짜 평화를 이루며 공동체 회복을 이뤄낼 수 있을까요? 오늘 그 본질적인 해답을 여러분과 아주 쉽고 편안하게 풀어보고자 합니다.
1. 정치는 왜 스포츠나 종교처럼 연합하지 못할까?
여기서 우리는 아주 흥미로운 질문을 하나 던지게 됩니다.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전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올림픽을 구경하기 위해 한 나라로 모여듭니다. 인종과 국경, 종교를 초월하여 관중석에 나란히 앉아 서로 손을 잡고 웃으며 응원합니다. 경기장 안의 선수들은 메달을 따기 위해 피 튀기게 싸우지만, 경기가 끝나면 서로를 껴안고 유니폼을 바꿉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모두가 동의한 엄격한 ‘스포츠 규칙’이 있고, 경기가 끝나면 각자의 안전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동호회도 그렇고, 온라인 게임도 그렇고, 심지어 종교조차도 마음만 먹으면 교리를 넘어 연합을 이뤄내는데, 왜 유독 ‘정치’에서만큼은 타협도, 신축성도 없는 극한의 대립이 반복되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정치의 냉혹한 3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첫째, 정치는 한정된 파이를 나누는 ‘생존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스포츠나 문화 활동은 승패가 갈려도 내 삶의 터전이 빼앗기지 않습니다. 종교나 취미 동호회는 정신적인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에 내가 행복하다고 해서 남의 행복을 빼앗지 않는 ‘비제로섬(Non-Zero-Sum) 게임’이 가능합니다.
반면 정치는 다릅니다. 정치는 우리가 내는 세금, 국가의 예산, 영토, 그리고 법적 권한처럼 ‘한정된 자원과 권력’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내가 가지면 상대는 가질 수 없고, 상대가 권력을 잡으면 나의 생존과 당장의 이권이 위협받는 구조, 즉 철저한 ‘제로섬(Zero-Sum) 게임’입니다. 그렇다 보니 타협과 신축성을 발휘하기가 구조적으로 매우 어렵고 사활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갈등을 조장해야 이익을 얻는 ‘힘의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평범한 다수의 시민들은 평화를 원하고 서로 돕고 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정치의 세계에는 분열을 먹고 자라는 기형적인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념을 극단으로 갈라치기 해야 자기 진영의 표가 단단하게 결집됩니다. 상대를 대화의 파트너가 아니라 타도해야 할 ‘악(惡)’으로 규정해야 나의 지지층이 돈을 보내고 권력을 쥐여줍니다. 즉, 정치는 평화보다 갈등이 더 큰 정치적·경제적 이권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 정치는 거부할 수 없는 ‘강제력(법률)’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동호회나 게임은 마음에 안 들면 탈퇴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결정은 ‘법과 제도’라는 이름으로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의 일상을 강제합니다. 내 가치관과 전혀 다른 법이 제정되면 내 삶이 구속되고 통제받기 때문에, 사람들은 조금의 양보도 없이 벼랑 끝 전투를 벌이게 되는 것입니다.
2. 해결의 시작: 내 안의 과잉을 걷어내는 ‘프락시스(Praxis) 분별력’
그렇다면 우리는 이 경직된 현실 앞에서 손을 놓고 좌절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거대한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무기는 바로 ‘프락시스(Praxis, 실천적 지혜) 중심의 분별력’입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나라로 갈라져 이토록 미워하며 싸우는 본질적인 이유는, 대개 내 생각과 이념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과도한 집착’ 때문입니다. 나의 정의를 상대에게 강요하려다 보니 마음에 과도한 긴장과 잉여 에너지가 쌓이게 되고, 그것이 결국 타인을 향한 날 선 비판과 혐오로 표출됩니다.
진정한 분별력은 나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를 꺾으려는 태도를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내 가치관이 소중한 만큼, 나 상대의 세계도 그만한 눈물과 역사의 무게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는 ‘멈춤’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도덕적 잣대로 상대를 뜯어고치려 하지 마십시오. 자극적인 정치 뉴스가 내 안의 분노를 자극할 때, 그것에 휘말리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서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프락시스 분별력의 핵심입니다. 내 안의 과잉된 에너지를 평온하게 가라앉힐 때, 비로소 경직된 세상 속에서 신축성 있는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유연함이 생겨납니다.
3. 공동체 회복의 대안: 신약성경의 ‘가정교회精神’
내면의 분별력을 갖추었다면, 이제 구체적으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실천적 모델이 필요합니다. 그 해답은 거창한 사회 운동이나 정치 개혁이 아닙니다. 바로 가장 작고 본질적인 공동체 모델인 ‘신약성경의 가정교회 정신’에 있습니다.
로마 제국의 서슬 퍼런 압제 속에서 태동한 초기 신약교회들을 보십시오. 그들에게는 거대한 교회 건물도, 화려한 조직 체계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삶의 터전인 ‘집(Home)’에 모였습니다. 놀라운 점은 그 작은 가정교회 안에 유대인과 이방인, 억압하는 주인과 억압받는 노예, 그리고 남성과 여성이라는, 당시 사회적 기준으로는 결코 한자리에 섞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함께 모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만나서 종교적 교리 논쟁을 벌였습니까? 정치적 이념 대립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모여서 날마다 떡을 떼고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며 서로의 삶을 돌보았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사도행전 2:46)
이 신약교회의 가정교회 정신의 핵심은 ‘어떠한 판단도 없는 환대, 진정한 쉼, 그리고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입니다.
남자의 세계와 여자의 세계가 만나 격돌할 때, 이념과 신앙의 차이로 가족 간에 벽이 생길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를 굴복시킬 더 정교한 논리가 아닙니다. “이번 주도 참 고생 많았다”며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는 격려, 그리고 상대의 지친 어깨를 판단 없이 품어주는 안전한 쉼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대한 중앙 정치의 판도를 당장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 내 가정과 이웃, 직장이라는 작은 영역에서 밥상을 차리고 서로의 다름을 품어주는 가정교회 정신을 실천할 수는 있습니다. 일상의 작은 영역에서부터 신뢰를 쌓아가는 이 정신이야말로, 갈라진 다섯 개의 나라를 하나로 잇는 가장 강력한 접착제가 됩니다.
4. 하나의 가족, 하나의 대한민국을 향한 여정
사랑하는 시민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우리는 여전히 저마다의 생각이라는 섬에 갇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서로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는 것은 서로를 배척하고 싸워야 할 이유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서로에게 다가가 배워야 할 미지의 영토가 이토록 넓다는 축복의 신호입니다.
세상은 본래 하나의 가족입니다. 거대한 힘의 논리와 정치적 갈라치기에 속아 소중한 이웃을 적으로 돌리지 마십시오. 내 생각을 관철하려는 내면의 과잉을 분별력 있게 걷어내고, 내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따뜻한 환대의 식탁을 차리십시오.
비록 이념과 신앙, 성별의 차이로 오늘은 서툴고 삐걱거릴지라도, 스포츠 경기장의 규칙처럼 서로를 공존의 파트너로 존중하며 일상의 작은 평화를 넓혀갈 때, 우리는 마침내 분열의 대한민국을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하나의 아름다운 가족 공동체’를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 평화롭고 아름다운 여정에 우리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 가십시다.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이념 갈등을 넘어, 우리 삶의 자리에서 진짜 평화를 실천하기 위해 함께 깊이 고민해 볼 주제들입니다: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감정 상하지 않고 대화하는 법
현대 가정과 일터에서 가정교회 정신을 실천하는 구체적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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